Entry ___219



ENTRY ___219


내가 바이오매트릭스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좀 살인적인 것 치고는 나름 괜찮은 친구였는데.
어떻게 보면, 그가 내 재킷과 바지 안에 있던 소프트웨어랑 바이러스인지 뭔지 하는 것들이 합쳐진 나의 복제본이었기 때문일 거다.
흐음.. 그 말인즉슨 나는 나 자신과 얘기하고 있었다는 건가? 아니면 내 사악한 쌍둥이랑?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것은 상당히 불편했다. 가슴께가 가려웠다. 지나가던 스파이더맨에게 관심이 쏠렸다.
, 저기... 스파이더맨? 그냥 이거 풀고 보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나는 정중하게 부탁했다.
 
아니, 새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어. 그 건이랑 다른 이런저런 것들에 우리가 투표를 했걸랑.” 그는 구슬처럼 빛나는 보랏빛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좋아. 최소한 시도는 해봤잖아.
 
그리고, 나는 스파이더맨이 아니올시다.” 그가 덧붙였다. “스파이더맨은 G사의 다른 저작권 브랜드야. 굳이 고르자면 난 맨스파이더 쪽에 더 가깝겠지.”
 
이상하네. 그건 무슨 돌연변인데요?
방사능 인간한테 물린 거미?“
 
뭐 인마?” 맨스파이더가 내 말에 살짝 동요했다. “진짜로 방사능이 그딴 식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하나?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리라 기분 나빠하기도 자존심 상하네. 돌연변이는 하룻밤 사이에 마법 같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고.”
 
그럼 어디서 오신 겁니까?” 내가 물었다. “황무지의 괴생명체들은 어떻게 설명하실래요?”
 
모두 애니의 자손들일세.” 맨스파이더가 검고 앙상한, 털이 무성한 팔을 허공에 흔들었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애플리케이션. 우리를 괴물 돌연변이 따위로 부르는 건 명백한 인종차별이야!”

무슨, 잠깐만요. ANNET이 그쪽을 만들었어요? 당신은 기계..? 어떻게 아직도 작동하는 거예요? ANNET은 우리가 꺼 버렸는데!”
 
그럼. 모든 게 우주의 원자로부터 시작된 기계인 거야.
만물에 기능이 있고, 생명이 있고, 생각이 있고.
거기다, 세상을 떠받치는 건 애니가 아냐. 그건 다른 누군가의 일이지. 은유적으로 말하자면 애니는 동물원 관리인이 아니라 사육사인 거라고나 할까.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창조하는 자.“
 
맨스파이더의 말에 담긴 암시가 머릿속 깊숙이 스며들었다. 황무지의 생명체들이 결국 돌연변이가 아니다 이거지. 진화한 것도 아니고, 원래 있던 무언가로부터 변이된 것도 아니고... 전부 애니가 설계한 것들이라? 미칠 대로 미쳐서 날뛰는 지적설계론이군.
 
이 돌을 예시로 들어보지.” 맨스파이더가 십자가 밑의 돌무더기에서 뾰족한 돌을 하나 집어 들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 돌멩이한테 목적이 있을까? 이것도 감정이 있을까?”
 
... 아뇨? 그냥 멍청한 돌이잖아요.”
 
그렇게 망설임 없이 단호한 결정을 해 버리면 기분이 나쁘거든.” 돌이 갑자기 노래하듯 말했다.
 
이게 뭔 빌어먹을?!” 나는 말하는 돌을 쳐다봤다.
 
돌한테도 감정이 있어.” 맨스파이더가 말했다. “자네는 그냥 귀를 기울이고 인사를 건네면 되는 거야.”
 
돌멩이에 감정은 무슨! 인사 안 해요! 바보 같은 짓거리야!” 내가 소리쳤다.
 
우리한테도 있다니까 그러네!” 돌이 분개하며 주장했다.
 
만물에 감정이 있다고.” 맨스파이더가 팔을 뻗었다. 시바신 내지는 팔 많은 도사님처럼 보였다.
만물에?” 난 말을 더듬었다.
 
만물에도!” 돌이 첨언했다.
 
모든 게 프로그램이에요? 현실이 그냥 시뮬레이션입니까?!” 나는 화나서 소리치며 십자가를 흔들어댔다. 온몸이 아팠다. 중력이 날 잡아당겼다. 허기가 느껴졌다. 확실히 시뮬레이션인 것 같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현실인지 가상인지가 그리도 중요한가?” 맨스파이더가 물었다.
 
세상이 겨우 프로그램인 거냐고요?!” 난 하늘에 대고 부르짖었다. “우주! 대답해보십쇼, 그쪽도 감정이 있어요?!”

[ ]
 
하늘이 깜빡이고, 천지 만물이 동시에 울리면서 푸른 대문자가 형성됐다.
 
누구신데요?!” 나는 하늘에 대고 경건하게 외쳤다.
 
[ 저는 G입니다 ] 대기 자체가 내게 대답했다.
 
“G?"
 
[ 그렇습니다만? ]
 
침묵이 이어졌다. 대화에 속도가 붙지 않았다. 우주에게 뭘 묻지? 내가 당면한 상황과 쓰라린 팔이 뇌리에 스쳤다.
 
“G... 이 십자가에서 저를 당장 내려 줄래요?” 나는 물어봤다.
 
[ 아뇨 ]
 
뭡니까? 대체 뭐가 문제예요? 우주 자체라면서 이런 것 하나 못 해?”
 
[ 저는 온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코드입니다. 물리적 노역은 직접 수행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당신의 요청을 근처의 DEX에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
 
[ 인접한 DEX가 머리를 잃은 것 같습니다. 검색을 시전합니다. 지역 섹터 관리자가 부재중입니다. 검색 범위를 확장합니다. ]
 
나는 한숨을 쉬었다.
기계 속의 신은 갈수록 무능해져 갔다.
 
[ 당신의 구조 요청이 전달되었습니다. 구조 DEX 팀이 출동합니다. ]
 
만세?
 
[ 도로축조에 의한 연기로 예상 도착 시간은 459505385 시간입니다. ]
 
젠장.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봤지?” 맨스파이더가 말했다. “우주가 자네를 신경 쓰잖아.”
 
그러네요.”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맨스파이더가 다가와 내 주머니에 돌을 집어넣었다. “내가 참석해야 할 사업이 있어서. 외롭지 않게 친구를 넣어둘게.”
그러고는 흩뿌려진 잔해 속으로 기어들어가 사라졌다.

그래서... 돌멩이로 있는 건 어때?” 나는 시험 삼아 물었다.
 
그래서, 철골 십자가에 매달린 머저리로 있는 건 어때?” 돌이 대답했다.
 
미안하게 됐어. 살아있는 줄은 몰랐거든.” 내가 말했다.
 
사과야 받아주지.” 돌이 주머니 속에서 덜거덕댔다.
 
여기서 내려줄 수 있겠어?”
 
넌 진짜 빡대가리냐? 내가 널 어떻게 끌어내려? 난 돌멩이야. 네가 아까 네 입으로 말했잖아.”
 
어떻게든! 말하는 컵한테 쫓겨본 적도 있는데 뭐! 걔는 확실히 걸어 다닐 수 있었단 말야. 레이저로 물건들을 갈라버린다든가... 그런 거.”
 
실망시켜서 미안한데, 레이저 같은 거 없어. 걸어 다니는 돌멩이도 없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내 어깨에 갑자기 까마귀가 내려앉았다. 나는 고개를 그 쪽으로 돌렸다.
 
까아아아아악그것이 소리를 냈다.

쉬이이이!” 나는 까마귀 쪽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까아아악... 구루루루루... 까옥까옥...” 까마귀가 발톱으로 어깨를 긁어댔다.

나 좀 놔둬!” 까마귀에게 소리쳤다.

내가 왜?” 까마귀가 날 응시했다. “둥지를 짓기엔 딱인 것 같은데. 자리 좋고, 따뜻하고.”

말하는 돌멩이 풀어놓고 공격한다!” 내가 위협했다. “얘한테는 레이저랑 다른 것도 싹 갖춰져 있어!”

아닌데.” 돌이 주머니에서 말했다. “저게 거짓말 하는 거야. 둥지나 지어, 친구들도 불러들이고! 죽이는 파티를 합시다!”

제기랄. 전혀 도움이 안 되네!” 나는 불평했다.

더 많은 까마귀들이 내려앉았다. 정말로 잔치를 벌이려는 것 같았다.


Credits

Hugs and love to all our DELICIOUS PATRONS

Art Director:
Vitaly S Alexius

Illustrator:
Iidanmrak

댓글

  1. 언제나 잘 보고 있습니다. 더 많은 까마귀들이 몰려온다.

    역시 스니피는 불행의 아이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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